[004일][09월04일][백일글쓰기2] 비
#연금술사 #백일글쓰기
#장대비 #수필
나는 비가 좋다. 매해 장마철이 되면, 쏴~아~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장대비를 가장 좋아한다. 올해는 장마가 있는 둥 마는 둥 해서 아쉬웠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장대비가 내리고 있다. 이런 날에는 우산을 쓰고
나가면 장대비는 우산을 두드려 댈 것이다. 집안에서 수많은 굵은 빗방울이 끝없이 땅으로 직진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비 오는 날에는 빗소리를 들으며 자는 낮잠이 최고다. 앞뒤로 창문을 열어 두면 차가운 바람이 집안으로 불어오고 맹렬한 빗소리가 그 뒤를 이어 밀려들어온다. 거실에 대자로 누워 살랑이는 바람을 만끽해 본다. 더위는 물러가고
가을이 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 비가 그치면 기온이 더 내려갈 것이다. 그러면 밤 송이들이 벌어지면서
햇밤을 수확할 수 있다. 햇밤이 시장에 나오면, 유튜브에서
본 대로 밤을 쪄봐야겠다. 5초만에 밤 속껍질까지 깔끔하게 벗길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 새로운 레시피대로 밤을 찔 생각에 기대에 부풀어 있다. 말끔한
알밤을 입안에 쏙 넣고 오물오물 깨물면 밤향이 콧속 가득 차오르고 밤 특유의 퍽퍽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찰 것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밤을 생각한다.
비가 내릴 때는 사방이 어둑하다. 어둡지도 않고 밝지도 않은 상태는
아늑함을 준다. 그래서인지 방안에 혼자 있으면 자꾸 잠이 쏟아진다. 자도
자도 또 잠이 오는 날이 비 오는 날이다. 주말에 비가 오면 어느 새 우리 가족은 잠에 빠져든다. 집 안에는 쏟아지는 빗소리만 떠돌아다닌다. 그럴 때는 부침개를 부쳐
먹어야 제격이다. 잠든 가족들을 두고 부엌에서 갖은 야채를 채로 썰어서 어떨 때 김치전을 어떨 때는
부추전을 부친다. 전 부치는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우면 다들 잠에서 깨어나 부엌으로 고개를 내민다. 앞뒤로 노릇노릇하게 얇게 부쳐진 전을 접시에 담아 주면 순식간에 접시가 빈다.
역시 부침개는 비 오는 날 먹어야 제격이다.
빗소리를 듣다 보니, 다음 주가 추석이라는 생각이 났다. 추석이 되면 꼭 하는 음식이 있다. 갈비, 홍어무침, 각종 전과 잡채. 이들이
우리집 추석 대표 음식이다. 친정과 시댁에서는 송편을 빚고는 하는데,
우리 가족은 송편을 별로 안 좋아한다. 간혹 남편이 송편을 사오면 먹기는 하지만,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지는 않는다. 대신 전을 부친다. 시댁 식구들은 전을 좋아해서 평소에도 자주 부쳐 먹지만, 명절에는
여러 종류의 전을 부쳐 놓고 심심할 때마다 집어먹는 걸 좋아한다. 나도 전을 좋아해서 꽂이전, 고추전, 명태전, 호박전, 깻잎전, 버섯전의 재료를 준비해서 하루 종일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전을 부친다. 그런데 방금 전 시어머님이 전화를 주셨다. 힘드니까, 이번 추석에는 전을 하지 말자고 하신다. 전을 부치느냐 마느냐를
두고 오늘 저녁 가족들과 상의해 봐야겠다.
잠깐 멈췄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빗소리와 함께 사위가 더
어두워졌다. 한낮인데도 저녁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집안의
불을 다 끄고, 창문을 모두 열어서 비의 기운을 집안으로 불러들여본다.
여름의 더위는 이제 사라졌다. 이제는 가을의 선선함이 찾아올 것이다. 먹을 것이 풍성한 가을에 태어난 사람은 너그럽다고 한다. 꼭 가을에
태어나지 안아도 가을이 되면 인심이 좋아진다. 서로 먹을 것을 나눠 먹고 몇 시간이고 조잘조잘 수다를
떨 수 있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그래서 나는 가을이 좋다. 이
비가 가을을 불러올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글자수 : 1279자(공백제외)
원고지 : 6.5장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