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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일][09월02일]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002][0902][백일글쓰기2]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연금술사 #또다시시작한 #백일글쓰기 #혼자쓰기와차이점은 #열하일기 #연암박지원 #중용 #도올김용옥

사람들은 단지 인간의 칠정(七情) 중에서 오로지 슬픔만이 울음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네. 기쁨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분노가 극에 치밀면 울음이 날 만하며, 즐거움이 극에 이르면 울음이 날 만하고, 사랑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며, 미움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욕심이 극에 달해도 울음이 날 만한 걸세. 막히고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없네. - <열하일기 1> 129페이지,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돌베개


요동의 드넓은 평야에 도착하자, 연암은 크게 울기 좋은 곳이라 했다. 드넓게 트인 벌판에 서서 큰 소리로 통곡하면 연암의 마음의 풀렸을까? 그러나 연암은 울지 않았다. 아마도 속으로만 크게 통곡했을 것이다. 그 어떤 것에도 막히지 않고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은 허허벌판에 서있는 연암은 조선의 사대부이지만 갖은 인습에 얽매여 사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한 마리 개미보다, 아니 한 톨의 좁쌀보다 작은 존재로 느껴졌을 것이다. 조선에서 내노라하는 가문의 자손으로서 뭇 사람의 찬양과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살지만, 연암이라는 한 인간은 드넓은 대지와 하늘 아래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던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처음 읽었을 때는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었다. <열하일기>를 처음 읽을 때의 나는 연암을 잘 몰랐었다. 양반전이나 허생전은 알아도 지은이가 누군지도 몰랐었으니까. 차츰 연암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읽고, 그에 대해 더 알고 나니, 연암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연암의 스승인 장인의 동생 이양천 선생의 죽음, 친구인 이희천의 죽음, 첩의 자식이라서 차별받는 벗들 그리고 정쟁의 한 가운데에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연암, 이 모든 상황들은 연암의 가슴 속에 울화가 쌓이다 못해 툭 터져버려도 마땅했다. 하지만 연암은 이 모든 상황들을 해학으로 웃어넘기며 글을 썼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는 사람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기본 지식이 쌓이고 난 후 다시 <열하일기>를 읽자, 이 대목에서 눈물이 후두둑 쏟아졌다. 나는 드넓은 평야에 홀로 써서 악을 써가며 통곡을 했다. 그 동안 억압해 두었던 모든 감정을 쏟아내고 나니, 후련하기 그지 없었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희노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화야자, 천하지달도야.) 희로애락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 상태를 중()이라 일컫고, 그것이 발현되어 상황의 절도()에 들어맞는 것을 화()라고 일컫는다. ()이라는 것은 천하(天下)의 큰 근본(大本)이요, ()라는 것은 천하사람들이 달성해야만 할 길(達道)이다. - <중용한글역주> 246페이지, 도올 김용옥, 통나무

연암의 통곡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통곡에 대한 이야기는 연암이 감정을 매우 잘 조절하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연암은 인간의 모든 감정은 울음으로 귀결된다고 말한다. 어떤 조건에서 울음으로 이어지는가? 감정이 극에 달하면 결국은 울음이 찾아온다. 고대부터 유학에서는 감정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했다. 자기자신을 완성하려면, 자기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만 한다. 자기 자신을 잘 알려면 자신의 감정 변화를 잘 살펴야 한다. 감정에 휘둘리면,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되고, 결국은 잘못된 일 처리로 많은 사람이 고통받게 된다. 따라서 자신이 왜 기쁜지, 왜 화가 나는지, 왜 슬픈지, 왜 즐거운지를 알아야만,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감정을 조절한다는 것은 기쁜 일, 화 나는 일, 슬픈 일, 즐거운 일을 만났을 때, 그 상황에 딱 맞는 정도로만 감정을 표출하는 것(中節)을 말한다. 이것을 중용에서는 화()라고 칭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왜 화가 나는지도 모르고 화를 내고는 한다. 매일 뉴스에는 술에 취해 버스기사, 택시기사, 길 가는 행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술에 의해 고삐가 풀린 감정은 불화(不和)를 일으킨다. 통제가 되지 않는 감정은 그 강도가 지나치게 표출되고 결국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연암은 술을 잘마셨다. 동 틀 때까지 술 오십여 잔을 마시고도 원래의 일정대로 말을 타고 떠날 정도로 자기 통제력이 뛰어났다.(<나의 아버지 박지원> 44페이지, 박종채, 돌베개) 그의 이러한 통제력은 끊임없는 자기 수양 때문이었다. 장인 이양천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어린 연암을 늘 걱정하고는 했다. 스승이기도 했던 장인의 가르침에 따라 연암은 완성된 인격체(이것을 성인 혹은 군자라 칭한다)로 살아가고자 노력했다. 그렇기에 연암의 아들은 아버지를 이렇게 기록했다. 큰 원칙과 법도를 한결같이 엄격히 지키되, 타인을 향한 애정을 잃지 않고 우스갯소리로도 분란을 해결하기도 했다(79페이지).

마음 수련이 잘 이루어진 사람은 결코 감정을 극으로 치닫게 하지 않는다. 극으로 치닫지 않으니, 울 기회가 없다. 큰 일에 있어서는 원칙을 꿋꿋하게 지켜내고 작은 일에 있어서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담은 우스갯소리로 상대방을 일깨워 주는 연암은 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연암이 요동의 허허벌판에 서서 통곡을 말한다. 꾹꾹 눌러둔 감정을 터트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이국땅의 인적없는 광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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