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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일][07월23일][365매일글쓰기] 아침 준비

[205][0723][365매일글쓰기] 아침 준비

 

오늘은 아이가 등교하는 날이다. 아이가 등교준비를 하는 동안, 빵으로 아침을 만들었다. 코로나19 비상근무로 남편은 주7일동안 매일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하기 때문에 아이와 둘이서 간단히 먹기로 했다. 어제 밤에 사둔 식빵으로 두 종류의 샌드위치(혹은 토스트)를 만들었다.

 

첫 번째는 버터설탕 토스트이다. 빵의 앞뒤로 녹인 버터를 바른 후 후라이팬에 약한 불로 굽는다. 어느 정도 노릇노릇해지면 뒤집는다. 막 뒤집힌 뜨끈뜨끈한 빵의 윗면에 설탕 1티스푼을 솔솔 뿌린다. 아랫면이 어느 정도 구워지면 뒤집는다. 다시 설탕 1 티스푼을 뿌린다. 후라이팬에 구워지고 있는 면의 설탕이 골고루 묻을 수 있게 빵을 상하좌우로 살살 흔든다. 설탕이 녹는 냄새가 나면 뒤집고 상하좌우로 흔든다.

 

버터가 없다면 식용유를 발라서 구우면 된다. 변종 레시피로 버터나 식용유 대신에 마요네즈를 바르기도 한다. 설탕은 아무거나 상관없다. 정말 간단하면서도 맛있다.

 

두 번째는 어느 유투버 캣맘이 자주 해먹는 계란 샌드위치이다. 그녀는 길고양이들을 돌보는데 길 위에서 살 수 없을 정도로 위독한 상태인 길고양이를 입양하기도 한다. 그녀의 집에는 개성 넘치는 고양이들이 각자의 성격에 따라 자유롭게 산다. 그녀는 영상의 끝에 항상 자신을 위한 식사준비와 먹는 과정을 덧붙인다. 처음 그녀가 이 샌드위치를 만들 때, 나는 신박하다고 생각했었다. 이 샌드위치의 이름은 달걀치즈 샌드위치이다.

 

계란 2개를 깨뜨린 후 소금 2 꼬집을 뿌리고 잘 풀어 둔다. 후라이팬을 약한 불에 올리고 식용유를 두른다. 예열이 되면 계란물을 팬에 붓는다. 살짝 익으면 정중앙에 식빵을 올린다. 계란이 어느 정도 익으면 식빵과 함께 전 뒤집듯이 뒤집는다. 식빵의 사각형 모양에 맞게 계란을 식빵 위로 차곡차곡 접는다. 네모난 계란 위에 슬라이스 치즈 한 장을 올린다. 이제 빵을 접을 차례이다. 뒤집개로 치즈 위를 눌러 준다. 접을 때 치즈와 계란이 예쁘게 접히게 하기 위한 조치이다. 뒤집개로 빵을 접는다. 치즈가 녹을 때까지 뒤집어 가며 굽는다.

 

치즈에 간이 되어 있기 때문에 소금을 조금만 넣어야 한다. 작은 2꼬집을 추천한다. 계란 노린내가 싫으면 계란 푼 물에 참기름 한 방울과 후추 조금을 함께 섞는다 식빵에 버터를 바르면 접힌 겉면이 고소해진다. 계란과 닿는 부분은 버터를 바르지 않는다. 치즈가 접힌 면의 접착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풀어지지 않아서 핫도그 느낌이 나는 샌드위치이다.

 

후다닥 만든 샌드위치를 각각 접시에 담고 마시는 요구르트와 함께 아이에게 주었다. 아침이라 입맛이 없는지 버터설탕 샌드위치와 요구르트만 먹고 갔다. 아이가 등교한 후 나는 계란치즈 샌드위치를 먹어봤다. 딱 내 취향이었다.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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