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일][07월21일][365매일글쓰기] 어쩌다
축의 시대 2
부제 : 선과 악, 빛과
어둠, 흑과 백, 둘로 나뉘다
어쩌다 <축의 시대>를
읽게 된지 2일차이다. 이 책은 쉽다. 그리고 명료하다. 나는 카렌 암스트롱을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유발 하라리처럼 그녀도 여러 문헌을 참조하고 학계의 최근 경향을 반영하여 주제를 일목요연하게 기술하고 있다.
어제는 카프카스 초원에서 생명을 해치지 않으며 살던 아리아인들이 기원전 1500년경
청동기 문물을 접하고 난 후 전사이자 약탈자로 변모한 이야기를 읽었다. 아리아인들은 계속 이동하며 그
지역의 원주민을 약탈하기도 했지만 아리아인 간의 약탈도 자행되었다. 오랜 평화가 무너졌고 처참한 살육이
일상이 되었다.
기원전 1200년경 한 명의 사제가 카프카스 초원에 우뚝 선다. 그의 이름은 조로아스터(Zoroaster). 그는 정의와 지혜의
신인 마즈다에게 계시를 받고 초원의 질서를 회복하려고 했다. 조로아스터는 백성을 모아 신성한 전사 인드라를
숭배하는 가축 약탈자에 대항하는 성전을 결심한다. 영혼(Spirit)을
숭상했던 선한 사람들이 악한 가축 약탈자를 없애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 결심은 아리아인들의 믿음을
뒤엎는 결정이었다. 기르는 가축에 대한 살생조차도 꺼려하던 아리아인들이 같은 아리아인을 죽여한다니!
조로아스터는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선을 악과 구분 지었다. 가축
약탈자에 대한 조로아스터의 분노로 인해 인류는 최초로 묵시록을 갖게 된다. 그 내용은 이렇다. 종국에는 선이 악을 절멸시킬 것이다. 그 순간 정의와 지혜의 신
마즈다와 불멸의 존재들이 세상에 내려와 아리아인들의 전통인 희생제를 드린다. 그런 후 큰 심판을 내린다. “악한 자들은 지상에서 쓸려 나가며, 타오르는
강이 지옥으로 흘러들어 ‘적대적인 영혼’을 태워 재로 만들
것이다. 그러면 우주는 원래의 완벽한 상태로 회복될 것이다. <중략> 이제 죽음은 없다. 인간은 신처럼 바뀌어 병, 노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35페이지” 조로아스터는 가축 약탈자와의 성전을 벌였지만 그의 죽음이
임박하여도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나의
뒤를 이어 다른 존재, ‘선한 사람보다 나은’ 초인적인 존재가
온다.”
조로아스터의 이러한 ‘마지막 날’ 혹은
‘마지막 전투’에 대한 생각은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전통을
따르던 아리아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마을 떠나 다른 부족에 의탁했다. 다른 부족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조로아스터교가 확립되었다.
선한 영혼만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익숙한 아리아인들에게 조로아스터는 ‘악에
대항하는 선’이라는 혁명적인 개념을 제시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사회로부터 퇴출당하기 마련이다. 설령 익숙한 것이 예전 사회에서는 옳았지만 변화한 사회에서는 그르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익숙한 것을 지키려고만 한다. 익숙한 것은 옳은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로아스터는 퇴출당했다.
이 지점에서 나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인간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예를 들면, 현대인은 이성적으로는 평등을 이해하지만 감성적으로는
근대의 표상인 왕족과 귀족을 동경한다. 그 증거는 현대인이 여전히 신데렐라 류의 이야기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영화이든 드라마이든 소설이든 심지어는 일반인 조차도 신데렐라의 냄새만 풍기면 큰 성공을 하게
된다. 이성과 감성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결국 조로아스터에게 손을 내민 것은 이웃 부족이었다. 어떤 이유로
인해 조로아스터의 혁신적인 개념이 필요한 이웃 사회가 조로아스터를 받아 들인다. 동족에게는 배척당하지만, 다른 종족에게는 환대를 받는 웃픈 상황이다. 조로아스터 사후에도
조로아스터교는 퍼져나갔고, 심지어는 가축 약탈자들이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기까지 한다. 정말 역설적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정의를 향한 갈망과 약탈을 향한 분노가 조로아스터교를
탄생시켰다. 그 결과 인류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 묵시록과
메시아라는 세 가지 신 개념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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