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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일][07월11일][365매일글쓰기] 불편함과의 대면 - 우파니샤드

[193][0711][365매일글쓰기] 불편함과의 대면 - 우파니샤드

 

채사장의 책은 흥미롭다. 나에게 새로운 책을 소개한다. 열한 번째로 소개된 책은 인도의 경전 <베다>의 결론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우파니샤드>였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여 졌기 때문에 어휘들이 생소했다. 우파니샤드는 스승과 제자가 무릎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앉아서 전해지는 지혜라는 뜻이다. 고대부터 스승은 가르침을 받을 자격이 되는 사람에게만 비밀스럽게 전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어서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책을 사서 고대의 지혜를 접할 수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자 마자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는 <우파니샤드>를 담아두었다.

 

<우파니샤드>가 전달하는 내용의 핵심은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다. ()은 우주의 최고 원리인 브라흐만이고, ()는 개인의 본질인 아트만이다. 일여(一如)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범아일여는 우주의 원리와 개인의 본질은 하나라는 뜻이다.

 

특이하게도 한국 사람들은 범아일여 사상에 익숙하다. 바로 불교 때문이다. 불교는 힌두교와 달리 <베다>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새롭고 독창적인 가르침을 더했다. 불교가 <베다>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기본 개념이 같다. 마치 주자학과 양명학의 관계와 비슷하다. 왕양명 선생은 주자학에 통달했지만, 일부 학설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독창적인 견해를 설파했고, 이 작은 부분이 달라지자 주자학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실제로 주자학과 양명학의 대부분은 같다. 단지 핵심 사상 몇 가지가 다를 뿐이다.

 

이제 범아일여 사상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러면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나는 <전습록>을 읽고 감격했었다. 양명학의 정수를 알게 되어서 기뻤다. 그래서 바로 실천에 돌입했다. 실천은 쉽지 않았다. 내 마음이 자꾸만 나를 속였다. 개인적인 욕심을 버렸다고 믿었지만, 나의 생각 곳곳에는 여전히 욕심이 가득했다. 나의 마음은 영악하게도 사실을 오도하고 내 스스로가 개인적인 욕심이 없다고 믿게 했다. 이것이 바로 환영이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이것을 마야(Maya)’라고 한다. 내 마음이 실제의 내 자신이 아닌 환영을 보여준 것이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무지(無知)’ 혹은 무명(無明)’이라 부른다. 나의 무지를 알아차렸을 때 굳어버렸다. 그리고 상심했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반복해서 나의 무지를 경험했다. 어떤 것을 안다고 해서 진짜로 아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실제로 경험했을 때야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를 꼼꼼하게 읽어간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의 텍스트 안으로 마음대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숨겨진 문을 열고 그 안을 들어갈 수 있을까요?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텍스트에 대한 선이해입니다. 이것은 아이러니하고 또한 비극적입니다.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미 그 무엇인가를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책을 읽음으로써 A라는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미 자신의 삶 속에서 A에 대해 체험했어야만 합니다. 세상의 모든 텍스트는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텍스트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그 지식에 대해 앞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은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정리하지 못했던 것들을 언어화해줄 뿐입니다. 나의 체험을 벗어난 것들은 나에게 체험되지 않습니다. - <열한계단, 열 번째 계단 나>, 채사장, 웨일북

 

나는 어린 시절부터 논어와 맹자를 알았고 일상 생활에서 자주 명구(名句)를 접했다. 그저 접촉했을 뿐 논어와 맹자는 나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의아했다. 나는 분명 잘 알고 있는데 왜 마음 속에 남지 않는 것일까? 왜 나의 생활은 명구와는 다른가? 그러다가 사서(四書)를 정독하고 토론하고 사유하고 글을 쓸 기회를 가졌다. 많은 시간을 투여한 끝에 겨우 한 귀퉁이를 잡을 수 있었다. 공자와 맹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명구 그대로 살려고 해봤지만 자꾸만 예전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실패는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더 잘 이해하게 했다. 실패를 통해서 배운 것이다. 실패를 통해 원형(原形)과 점점 더 닮아가는 것이 익히는 과정()이다.

 

채사장이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이해한다. 어떤 책을 읽었다고 해서 바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채사장의 말처럼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치는 것은 내가 이해했지만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책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범아사상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부터는 끊임없이 생각을 되풀이하여 내 몸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 이것을 체득(體得)이라 한다. 체험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체득이다. 범아일여 사상을 체득했을 때 비로소 나와 우주는 하나가 되고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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