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일][07월09일][365매일글쓰기] 열한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우리는 한 가지에만 집중한 사람들의 한계를 쉽게 본다. 책만
본 사람들과, 현실에 적응하기만 한 사람들의 한계. 우선
책만 본 사람들의 한계는 타인에게 엄격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이 쉽다. 왜냐하면 책의 울타리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실제 세상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까닭에 현실의 폭력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다른 사람들이 나약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 발을 디디면 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당황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나약함을
부정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된다. 모든 일에서 불평불만거리를 찾아내는 사람, 타인의 잘못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 선과 도덕과 정의를 습관적으로
강조하는 사람. – “열한계단-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현실 - 공산당 선언’, ‘이상과
현실’, 채사장, 웨일북
어느 날 친구가 재미있는 팟캐스트를 소개해 주었다. 일명 ‘지대넓얕’. 풀어쓰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다. 세 명의 패널이 주고
받는 대화는 유쾌했고 얻는 것이 많았다. 팟캐스트의 주인장은 채사장인데, 그의 목소리는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차민혁 교수를 연기한 김병철 배우를 떠올리게 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지적인 느낌이랄까! 오늘 포털을 검색하고 알게 된
사실은 채사장의 외모는 배우 김병철과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친구는 책도 소개해주었다. 위에 인용한 책이다. 당시에는 책 읽기가 서툴러서 인문학 강의 교재만 읽기에도 벅찼다. 그래서
채사장의 책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고나서 다음 책을 고르던 중에 채사장의 책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열한 계단”은 채사장의
독서 여정을 서술하고 있다. 채사장이 책과 함께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각 단계별로 채사장을 뒤흔든 진리가 제시된다. 나는 네 번째 계단
철학과 다섯 번째 계단 과학이 인상 깊었다. 현재 관심있는 분야들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다른 글에서 상세히 다르기로 한다.
위에 발췌한 부분은 나의 젊은 시절과 똑 닮았다. 속으로 꿍얼꿍얼거렸던
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나. 내로남불이었던 나. 회상하자면 끝이 없을 듯하다. 책으로만 배운 사람의 한계에 부딪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사회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또 다른 한계에
부딪혔다.
다음으로 현실에 적응하기만 한 사람들의 한계는 자신에게 너무도 너그럽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계획과 일정에 따라 정확하게 진행되는 일 따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음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 옳고 그름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타협과 조율을 통해서만 상황에 따라 문제를 봉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을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된다. 선과 도덕에 대해 하찮게 여기는
사람, 모든 것을 손익으로 판단하는 사람, 심연의 깊은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 – 같은 책 같은 부분
마지막에 언급되는 ‘심연의 깊은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세상과 영합해서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하며
흘러가다 보니, 더 이상 사유를 하지 않게 되었다. 즉물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갖가지 욕망에 휩싸였다. 엄청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탐내고 넓은 평형의 아파트를 원하고 잘 빠진 외제차를 타고 싶어했다. 욕망에 눈이 멀어 책을
멀리했고 얕은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인문학을 만나 독서를 재개한 이후로 한계를 하나씩 극복해 가고 있다. 모든
것을 극복하면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채사장의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진다. 더불어 책을
읽고 싶은 욕구까지 치솟게 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채사장이 언급한 내용을 토대로 글을 쓰려 하면
얼마 가지 못하고 막힌다는 점이다. 아마도 다이제스트가 갖는 한계인 듯하다. 아니면 나의 한계일 수도 있다. 나는 요약문만 읽고는 생각을 이어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채사장은 나에게 씨앗을 뿌렸다. 이제
새싹을 틔우고 잘 자라게 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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