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일][06월04일][365매일글쓰기] 검사는
무서워
상상 속의 나는 당당했다. 현실 속의 나는 너절했다. 상상 속의 나는 그깟 거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큰 소리쳤다. 현실
속의 나는 안색이 흙빛이 된 채로 보호자로서 함께 온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징징댔다. 상상 속의 나는
우아하고 당당하게 검사대에 올랐지만, 현실속의 나는 당황한 채로 검사대 위에서 몸을 웅크렸다.
검사를 진행하는 센터의 시스템은 잘 완비되어 있었고, 일하는 사람들도
숙련되어 있었다. 그 중에 검사를 받으러 온 환자인 나만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도 않았고 미숙련이었다. 내 이름이 불렸다. 검사실로 들어 오란다.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고 나서 긴 설명을 들었다. 멍해서 귀에 한
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탈의실, 사물함만 들렸다.
며칠 제대로 먹지 못해서 뇌로 영양분이 충분히 가지 못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의 뇌는 흐물거렸고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여자 탈의실로 간다는 게 긴장해서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창피했다. 탈의실에 가서 한참을
헤맸다. 다행히 환복하는 법이 크게 붙어있어서 그대로 따라 했다. 본능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니었으면, 엉뚱한 짓을 할 뻔했다.
꾸물꾸물 준비를 하고 꾸물거리며 나왔다. 여전히 멍했다.
내가 걷고 있나? 나의 아바타가 걷고 있나?
안내에 따라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치 게임같다. 스테이지를 하나씩 깨며 전진하는 게임처럼 검사실 안을 하나씩 깨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현실인가? 게임인가? 누군가가
등장했다.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혈압을
재고 동의서를 받았다. 낯선 환경과 곧 닥칠 검사에 긴장해서 얼굴이 빨개졌나보다. 열이 있냐고 묻더니 체온까지 재었다. ‘난 무섭다고!!!’
검사실에서 하루 백여 명을 검사하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이 일상일 것이다. 환자인
나에게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낯설다. 검사가 주는 중압감도 무지무지 높았다. 혹시 검사 결과가 안 좋으면 어떡하냐는 걱정도 있었다. 검사하는
입장에서는 모든 가능한 경우를 설명해 주어야 할 것이지만, 설명을 듣고 있는 나의 얼굴은 점점 더 우글어
들었다. ‘뭐라고? 결과에 따라 바로 입원도 할 수 있다고?’
검사가 끝났다. 여전히 게임 속에 있는 듯하다. 아이를 만났는데, NPC인가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다. 풀린 걸음으로 휘청이며 검사실을 나섰다. 배가 너무 고팠다. 아이와 함께 병원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뭔 정신으로 주문을 하고
음식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마치 게임 시나리오를 따르듯이 기계적으로 행동했다. 아이에게 물었다. “걸어갈까?” 아이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버스 타고 가자.”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긴장이 풀린 탓에 무척 피곤했다. 자고 또 잤다. 결국 저녁 상은 아이가 차려주었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김치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버섯이랑
생선조림도 맘껏 먹었다. 맞아! 이런 게 행복이지.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듯이 몸을 길게 들여 기지개를 켰다. ‘검사
끝났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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