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일][05월05일][365매일글쓰기] 고질병
문득 글감이 떠올랐다. 예전에 조지 오웰의 글을 읽으면서 선뜻 동의하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토론할 때 이 부분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도 올렸었다. 간혹 이 문제가 떠올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갑자기 10시가 되어서야 떠오른 이 글감에 나는 난감해졌다. 그 글을 쓰려면 조지 오웰의 글 몇 편에서 발췌를 해야만 했다. 시간에
따라 변하고 굳어지는 작가의 생각을 추적해야만 제대로 된 글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밤 10시는 추적하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이 글은 나중에 써야만 한다.
근거에 집착하는 것은 나의 고질병이다. 사회에서 한 개인이 자기 주장을
하려면 명확한 근거 위에 서야만 한다. 근거 없이 기억에 의존해서 주장을 펼치면, 명확한 출처를 대라는 공격에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런 이유로
근거 혹은 구체적인 자료가 없으면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오래 전의 일이다. 정부가 정책을 변경하고자 했다. 정책 변경으로 인한 추가 투자비용을 산출해야만 했다. 나는 막막했다. 그 때 팀장이 나섰다. 우리는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계산을 했다. 팀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저렇게 구체적인 근거를 만들어갔다. 유력
인산 한 명의 발언으로 어마어마한 비용의 설비 투자가 일어나야 하는데, 문제는 이 설비들은 구 세대
물건이었고, 머지 않은 미래에 차근차근 교체되어 없어질 설비였다. 이
심각한 상황을 하나하나 구체적인 데이터를 들어 논리를 펴나갔다. 만약 우리에게 현장의 경험과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었다면,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유력 인사의 말 한마디에 꼼짝없이 불필요한 투자를 해야만
했을 것이다.
근거! 나의 삶은 근거와의 투쟁, 그
자체이다. 매일 글을 쓸 때도 근거를 발 밑에 둘 때와 아닐 때 글의 힘의 다르다. 근거가 있을 때의 글은 당당하다. 그렇지 못할 때는 한없이 쪼그라든다. 떄로는 근거 따위는 던져버리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다. 그런 이유로
시와 소설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 물론 시나 소설이 근거 없는 글이라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산문보다 더 준엄하게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창작에는
자유로움이 내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는 자유로움은 아직 저 멀리 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문학감성이 없기 때문이다. 시? 소설? 감성 충만했던 십대에는 시와 소설을 읽고 빠져들었었다. 그러다가 점차 시와 소설에서 멀어졌고, 이제는 시와 소설을 읽어도
맨숭맨숭하기만 하다. 그러므로 당분간 나의 고질병은 지속될 전망이다.
글자수 : 939자
원고지 : 6.5장
#연금술사 #365매일글쓰기
#숭례문학당 #글쓰기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