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5일차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120~147페이지)
2019년 8월 7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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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은인구폭발을가져왔다 #밀때문에인간은정착했다
▶오늘의 한 문장
농업 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 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 124페이지
▶단상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면 삶이 나아지겠지.’ 이 말은 현대인이 아닌 1만 년 전 농부의 말이다. 떠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채집하던 시절보다 한 곳에 정착해서 밀을 가꾸고 수확해서 먹은 생활에서 안정감을 느꼈을 것이다. 집, 밭, 가축 등의 소유물도 늘었다. 집 안에는 아이들도 더 많아졌다. 농부는 더 늘어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밭을 더 늘리고 더 많이 더 오래 일했다. 밀의 수확량이 늘수록 가족 수도 더 늘었다. 그러니 삶은 항상 고단했다. 더 많은 수확을 위해 더 많이 더 오래 일해야 한다. 어째 현대인의 삶과 비슷하게 느껴지지 않은가? 현대인은 가족이 아닌 생활용품(실은 사치품)을 위해 더 많이 더 오래 일한다. 옆 집보다 더 좋은 자동차, 새로 나온 더 커진 화면의 TV, 명품 옷과 가방, 일 년에 서너번은 가야만 하는 여행 등등을 위해서이다. 광고의 문구처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나 “열심히 일한 당신 더 많이 사라“는 명령을 충실히 따르면서 산다.
▶발췌
이 모든 상황은 대략 1만
년 전 달라졌다. 이때부터 사피엔스는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몇몇 동물과 식물 종의 삶을 조작하는
데 바치기 시작했다. 인간은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씨를 뿌리고 작물에 물을 대고 잡초를 뽑고
좋은 목초지로 양을 끌고 갔다. 이런 작업을 하면 더 많은 과일과 곡물과 고기를 얻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간이 생활하는 방식의 혁명, 즉 농업혁명이었다. – 120~121페이지
온갖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인류를 먹여 살리는 칼로리의 90퍼센트 이상이 밀, 쌀, 옥수수, 감자, 수수, 보리처럼
우리 선조들이 기원전 9500년에서 3500년 사이에 작물화했던
한 줌의 식물들에서 온다. 지난 2천 년 동안 주목할 만한
식물을 작물화하거나 동물을 가축화한 사례가 없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수렵채집인 시대의 것이라면, 우리의 부엌은 고대 농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 122페이지
한때 학자들은 중동의 어느 특정 지점에서 농업이 시작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중동 농부들이 자신들의 혁명을 수출한 게 아니라 농업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완전히 독자적으로 생겨났다는 생각에 합의하고 있다. - 122페이지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중략> 농업 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 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 124페이지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사제, 상인은 아니었다.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 124페이지
새로운 농업노동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사람들은 밀밭 옆에 영구히 정착해야만 했다. 이로써 이들의 삶은
영구히 바뀌었다.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다.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 126페이지
영구 정착촌에 살면서 식량공급이 증가하자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방랑하는 삶을 포기하자 여성은 매년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기는
젖을 일찍 뗐다. 죽 같은 이유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질병이
들끓는 정착지에 살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모유를 덜 먹고 곡물을 더 많이 먹게 되면서, 아이들이 죽을 더 먹으려 형재자매들과 경쟁하게 되면서, 어린이 사망률은
급격히 치솟았다. 대부분의 농경사회에서 최소한 어린이 세 명 중 한 명이 20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하지만 출생률 증가가 사망률 증가를 앞질렀다. 사람들은 계속 이전보다 아이를 더 많이 나았다. - 133페이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치명적인 계산오류를 범했을까?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이 오류를 범하는 이유와 동일한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중략>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삶이 더 나아지겠지.’ - 133페이지
그렇다면 왜 계획이 빗나갔을 때 농경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 때문에 돌아갈 다리가 불타버렸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 134페이지
역사의 몇 안되는 철칙 가운데 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 135페이지
(기원전 9500년 전
세워진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는 또 하나의 놀라운 비밀을 지니고 있다.
유전학자들은 작물화한 밀의 기원을 오랫동안 추적하고 있었는데, 최근 발견이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작물화된 밀의 변종 중 하나인 외알밀은 괴베클리 테페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카라사다그 언덕이 발상지다. <중략> 먼저
사원이 세워지고 나중에 그 주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 140페이지
지구상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대형 포유류를 순서대로 꼽으면 사람이
첫째이고 2, 3, 4위가 가축화된 소, 돼지, 양이다. - 142페이지
불행하게도 진화적 관점은 성공의 척도로서는 불완전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뿐, 개체의
고통이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축이 된 닭이나 소는 아마도 진화적 성공의 사례이겠지만,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물인 것도 사실이다. 동물의 가축화는 일련의
야만적 관행을 기반으로 이뤄졌고, 관행은 수백 수천 년이 흐르면서 더욱 잔인해졌다. - 14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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